소개 2014.08.0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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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한국여성모임 30년역사.pdf 

https://drive.google.com/file/d/0B5jCG-tXGibBZkR4SHpqWmVzeDg/view?usp=sharing



재독한국여성모임창립역사

재독한국여성모임은 1978년 9월 17일에 “재독한국여성모임 창립선언문”, “여성문제에 대한 우리들의 기본입장”, 

“행동방향”과 “회칙”(별첨 참고)을 만들고 1978년 10월 6일부터 8일까지 프랑크푸르트에서 약 60명이 모여 

재독한국여성모임 창립총회를 개최함으로써 공식적으로 발족하였다. 여성모임이 결성되기 전에 1976년부터 

세 차례에 걸친 세미나와 1977년부터 "재독 외국인 간호사 송환"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이 대대적으로 진행되었고, 

이에 동참한 많은 여성들이 여성모임을 창립, 조직적인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 시대적 배경 >

1. 유엔의 “여성의 해” 선포와 여성운동의 활성화 


1975년에는 유엔이 “여성의 해”를 선포하여 그 간에 잠재적이며 산발적으로 거론되고 있던 여성문제가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차원에서 획득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을 계기로 이곳저곳에서 오랫동안 인간의 역사를 지배해 온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아래 

여성을 억압하던 각종 사회제도와 여성을 비인간화하던 사상과 관습에 대한 비판의 함성이 커지기 시작했다. 

독일에서도 

다양한 형태의 여성조직과 시민조직들이 탄생하였고 여성해방이론에 대한 토론도 활성화되었다. 2003년에는 

재독한국여성모임과 마찬가지로 독일의 여러 여성조직들이 25년을 자축하는 것을 볼 수 있다.

2. 한국 민주화 운동에 참여 


두 번째로는, 독일에서 1967년에 일어났던 “동베를린 간첩단사건”으로 암담함과 공포 속에서 살던 한인들이 박정희 

독재정권의 유신선포 이후 1974년 봄부터 그 냉각상태를 극복하고 정치적 의식을 다시 분출시키기 시작했고, 한인 

단체를 조직해 박정희 독재정권에 투쟁을 선언하고 나서게 되었다. 


3. 간호사 스스로 권익 찾기

당시 독일에 구성된 한인사회의 시대적 상황을 보면, 재독한국여성모임의 창립을 자극할 수 있었던 중요한 선례 중의 

하나는 이미 1974년에 베를린에서 한국간호사로 와 있던 여성들이 “스스로를 돕는 한국여성모임”을 발족하였다는 

것이다. 이 모임은 한국여성들이 외국인 취업여성으로서 “3년간의 취업을 전제로 한 노동계약조건 문제”, “체류와 

노동이 함께 묶여져 있는 외국인법” 그리고 “한국여성들의 신체적 조건으로 인하여 양로원에서의 업무를 병원 근무로 

바꾸려고 할 때의 어려움” 등, 여러 가지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하고, 낯선 땅에서 특히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서 

기인한 격리, 소외 및 외로움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었다. 


당시 이 모임을 발족할 때 참가했던 한 베를린 여성의 회상에 의하면, 첫 모임에는 10명의 한국여성이 한 학생기숙사

공동사용실에 모였다고 한다. 모이자마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여성들이 자신들의 가슴에 담겨있던 그리고 맺혀있던 

말들을 동시에 꺼내는 바람에, 한 사람이 말한 후 다음 사람이 말하는 규정을 처음부터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그 말은 물론 그 만남이 각자에게 얼마나 중요하였는가 하는 것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한국간호사들이 각 병원이나 양로원에서 갖는 어려움, 각 개인들이 갖고 있는 문제서부터 기쁨, 결혼, 자녀, 

재교육과정을 밟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 날 모든 말이 오가면서 이 모임을 정기적으로 만들고 베를린의 모든 

한국여성들에게 알리자는 것까지 토론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첫 학습의 모임에서, “토론할 때 본인의 의견을 

어떻게 논리적이며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가”를 다음 번의 교육프로그램으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두 번째로, 재독한국여성모임의 창립의 배경으로 지적되어야 할 부분은, 베를린 뿐 만 아니라 하이델베르크, 뮌헨, 

프랑크푸르트, 쾰른, 뒤셀도르프, 본 등 독일의 15개 대도시 주변에 거주하는 한국여성들이 베를린 지역처럼 

지역적 차원에서 여성들의 모임을 이미 만들어 나갔다는 것이다. 이 지역 모임에는 한국 간호사 뿐 아니라, 유학생, 

한인교회소속 중 정치적 문제에 관심이 있었던 여성들, 또한 1974년에 조직된 한인단체 “민주사회건설협의회”에 

소속하여 활동하던 여성들이 소속되어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 독일에 거주하는 한국여성들이 함께 모여보자는 의욕이 성숙되었다. 1976년부터 

조직출범까지 이루어진 세 차례 세미나의 주된 내용은 여성해방에 대한 인식, 한국여성의 입장에서 본 해방을 

개념화하고 정의하려고 한 일차적인 시도와 여성들간의 접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세미나를 준비, 추진하기 

위하여 독일 전역에서 관심을 가진 한국 여성들이 자신의 시간과 돈을 들이고, 희생까지도 감수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꾸려나갔다. 베를린 지역의 “스스로를 돕는 한국여성모임”도 이러한 세미나 준비가 있다는 

소식을 받고 준비모임에 참가하였다. 


제 일차 세미나가 열린 1976년 4월, 하이델베르크에는 각 지역에서 온 여성 50여명이 참가하여 “초기 한국여성의 

해방운동과 우리” 그리고 “한국여성의 사회적 지위”(별첨 세미나와 활동 종합 기록서 참조)를 주제로 하여 열띤 

토론을 벌렸다. 그러나 여기서 <어떤 한국여성모임을 조직할 것인가> 하는 것은 논의되지 않았다. 그 이유로 우선 

민주주의와 여성해방의 관계성에 대해 참여한 여성들의 관점이 서로 달랐고, 또한 그들의 사회적 출신배경과 

사회화 과정이 달랐다는 것, 예를 들면 어떤 여성은 직업인인 간호사로 독일로 왔고, 다른 여성은 유학생으로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가 서로 처음 대면하는 자리였다는 것도 이유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첫 세미나에서의 열기를 가지고 약 5 개월 후 다시 두 번째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여기서도 두 주제를 가지고 발제와 

토론이 있었는데, 첫 세미나에서와 다른 점은, 그 중의 한 주제가 현실적 문제와 연결된 “재독 한국간호원의 문제와 

여성해방”이었다. 그리고 이 주제는 외부 강사가 아닌 참가한 여성들이 스스로가 준비한 것이라는 데 의미가 깊었다. 


이 세미나에서 처음으로 재독 한국여성들의 조직을 만들었으면 어떨까? 하는 제안이 있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이해관계, 정치적 관점의 차이, 그리고 사회계층의 차이에서 오는 입장의 차이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반대를 하여 조직구성논의는 더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세미나를 준비하기 위하여, 그리고 이미 만들어진 

여러 지역여성들 간의 연락을 도모하기 위하여 각 지역에 대표를 두도록 하였다. 그것으로 하나의 임시조직연락망이 

결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977년 5월에 세 번째 세미나가 개최되어 여기서는 여성문제와 관련된 두 이론적 주제를 놓고 발제와 토론이 있었다. 

다시 여성모임이 조직되어야 하느냐 마느냐의 토론이 있었는데 계속 의견차이가 있었다. 그 당시 참여여성들을 

인터뷰한 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일차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여성모임이 조직된다면 사업의 내용과 학습을 여성해방문제에다 중점을 두느냐 

아니면 한국의 민주화문제에 중점을 두느냐 하는 것이었다. 또한 참가한 몇몇의 여성들에게는 <민주사회건설협의회>

의 회원으로 있던 여성들과 자리를 함께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당시 이 단체는 남한정부로부터 “빨갱이 단체”로 

낙인찍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세미나에 모인 여성들이 함께 “남한의 현 정치적 상황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성해방문제”를 다루는 관점에 대한 의견에도 차이도 있었다. 모든 여성들이 여성문제를 이론적으로만 다룰 것이 

아니라 한국여성들의 실제적 문제를 다루자는 것에는 동의가 있었으나, 실제적으로 한국여성들의 제 문제를 다룰 때 

그러면 그 현장이 어디냐 하는 것에는  의견의 차이가 있었다. 한국여성들의 실제적 문제의 현장은 독일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재독 한국간호사들의 문제는 한국에 있는 한국여성들의 일반적인 문제를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관점을 내세운 여성들은 결국 앞으로의 불참을 선언하였고 그래서 여성모임을 결성도 무산이 되었다. 


이 세 번째 세미나의 주제로는 여성해방과 관련된 이론적 인식이 중점이었으나, 다른 테마,  그 당시 독일 바이에른 

주에서 제일 먼저 시작된 <한국간호사 추방사건> 이후 점점 다른 지역으로도 한국간호사 추방사건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상황보고도 있었다. 토론을 통하여 <외국인간호원추방>을 반대하기 위한 서명운동과 여론화운동을 

전국적으로 조직하여 전개하자는 계획을 하였다. 그때 세미나에 참가한 한 여성이 위의 세 번에 걸친 세미나의 

결과를 회고한 말을 정리해보면, “우리는 재독 한국간호사들의 문제, 제 3세계 여성문제 그리고 남한에서의 

여성노동자문제를 가지고 이론적으로 파악해 보고 토론도 하였다. 따라서 이 <외국인간호원추방반대> 운동을 

이론적 바탕을 가지고 전개해 나간다는 것은, 바로 이론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며 추상적으로 머물지 않고 

구체적으로 현실을 개척해 나간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활동은 조직된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과제이며 또한 깊은 의미를 던져주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무엇보다 이 모임의 중요한 성과는, 세미나 참가자들의 대부분이 “재독 한국간호사”라는 

현실인식 속에 그 권익옹호, 그리고 독일로 오게 된 사회적 배경에 얽힌 한국과 국제정치, 그와 관련된 

국제경제구조의 맥락을 찾으려는 것으로, 곧 여성모임이 태어날 수 있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사업의 현장을 

발견한 것이었다. 


이상의 문제점들을 인식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동시에 1977년 초에 재독 한국간호사들이 강제해고와 강제송환을 

당하는 사례가 늘자, 그 해 5월 세미나에서 <재독 한국간호원 강제송환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같은 해 7월부터는 “우리는 인간이지 상품이 아니다”, “가치는 있으나 더 쓸모가 없어진 한국간호사” 라는 

구호아래,

첫째,  실업보험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체류허가 연장을 보장할 것
둘째,  무기한 체류허가를 가능하게 할 것
셋째,  독일에서 계속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할 것,

등의 요구 사항을 실은 호소문과 함께 이미 구성되어 있던 각 지역모임을 중심으로 서명운동이 시작되었다.

여러 도시의 각 병원 앞에서 또 각 도시의 중심가에서 행인들에게 알리고, 병원 내에서는 직장동료에게 

인식시키는 등 일반대중 속에서 서명 및 여론화운동을 벌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독일의 정부관계당국에 

부당한 처사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였다. 그리고 연대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각 여성단체, 인권보호단체, 

노조, 교회단체와 언론계를 향한 서명운동과 여론화작업을 펼쳐나갔다. 


이렇게 모아진 서명은 공개서한과 함께 각 연방주의 관계당국으로 보내졌다. 1978년 3월에는 뮌스터에서 

한국간호사추방문제에 관한 공개집회를 열어 독일정부측 담당공무원과 서명운동에 협조했던 여러 기관, 단체, 

개인 및 보도기관들이 한 자리에 모인 가운데 서명운동의 경과를 보고하고 공개질의와 기자회견을 가짐으로서 

서명운동은 절정에 달했다.

그 집회 이후 베를린 시를 선두로 하여 소속 각 연방주의 정부에서는 한국간호사들에게 무기한 체류 및 

노동허가를 발급하였다. 


힘든 고비가 많았으나 일반시민들의 많은 격려와 성원, 여러 단체들로부터의 지지와 후원은 서명운동에 

동참하는 여성들을 더욱 고무시켰다. 서명운동의 임시연락처가 된 각 지역모임에는 더 많은 한국여성들이 

관심을 보이며 참가했고 서명운동을 계기로 새로운 지역모임도 구성되었다. 


서명운동시 각 지역모임과 개인들의 소식과 정보를 종합하고 운동의 대외창구 역할을 위해 잠정적으로 

들어졌던 “재독한국여성모임”은 그 후 이 서명운동을 통한 제반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일 전역에 산재해 있던 

지역모임을 엮어 같은 이름인 “재독한국여성모임” (이하 여성모임으로 지칭)으로 정식 발족하게 되었다. 



재독한국여성모임 창립선언문

우리들 재독 한국여성은 이곳 독일에 체제하면서 갖는 공통의 문제점을 의식하고 해결하고자 1976년 4월에 

처음으로 Heidelberg에서 모임을 가졌다.

한국여성문제의 성격을 파악하고 그 해결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세 차례에 걸친 세미나를 가지던 중 이곳 한국인 

여성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간호요원들의 체류문제가 강제귀국처사에 다달았음에 이에 반대한 서명운동을 

전독적으로 전개하였고 그로서 독일 여론계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미 자치적으로 구성된 각 지역모임들을 통하여 우리들은 보다 유기적으로 각 지역의 활동을 조정하여 공동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조직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여기 여성문제에 대한 우리들의 기본입장과 행동방향을 밝혀 

조직체로서 우리들의 모습을 나타낼 것을 결의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내적으로 우리들에게 스스로의 방향에 대한 새로운 다짐이 될 뿐 아니라 외적으로도 우리와 뜻을 같이 

할 더 많은 동조자를 얻기 위함이다.



여성문제에 대한 우리들의 기본입장

여성문제는 근본적으로 여성들이 처하고 있는 시대와 나라의 사회구조의 문제점 속에서 그 성격이 규정되며 해결의 

방향이 제시된다고 본다.

따라서 한국여성의 문제는 오늘날 한국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가 가지는 모든 문제와 직결돼 있는 것이다. 

즉 한국여성문제는 국제관계의 모순 속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후진국 여성의 문제로서 파악되며 민족해방, 사회해방, 

나아가서는 인간해방과 밀접한 상관관계에 있다고 본다. 

여기 모순된 한국사회구조의 가장 직접적이고 집중적인 희생의 대상이 되고 있는 도시, 농촌의 여성근로자들 및 

한국사회의 가장 어두운 밑바닥을 헤매는 수많은 인간부재의 여성들 속에 한국여성의 심각한 문제를 발견하며 이들 

여성들의 생존권, 인간의 존엄성 획득이 한국여성운동의 당면과제라고 본다.


한편 인력수출정책의 일환으로 이곳 독일에 와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우리는 한국근로여성으로서의 기본적인 

공통점을 발견하고, 그들이 이곳에서 갖는 문제를 함께 논의,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곧 한국여성문제해결에의 

한 구체적인 실천이 된다고 본다.

나아가서 우리는 여성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여성을 구속하는 사회구조자체의 질적 변화가 그 전제조건이 된다고 

보는 동시에 인간의 의식구조를 혼돈하게 하는 모든 여성 적대적인 인류문화의 유산을 검토, 타개하는 부단한 행동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보고, 이상의 우리 입장을 실현하기 위한 행동방향을 다음과 같이 가진다.
                                         


행동방향

1. 우리는 한국사회의 모순 속에 처해있는 도시, 농촌의 근로여성 및 인간이하의 삶을강요당하는 모든 여성들과 

연대하며 그 문제해결에 적극 이바지한다.
2. 우리 재독 한국여성들의 권익을 옹호하며 이곳에서 당면하는 문제들을 공통으로 해결하며 사회에 능동적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의식을 고취한다. 

3. 우리는 여성을 비하하는 사회의 인습과 문화의 오류를 제거하기 위한 전인간의 의식화를 주장하며, 새로운 

인간상 구축을 위해 노력한다. 

4. 우리는 한국사회의 불합리를 해결하고자 하는 제 단체 및 인간해방을 실현하고자 하는 모든 단체들과 유대관계를 

가진다.
 
1978년 9월 17일


재독한국여성모임 




회 칙

제 1 장:  총   칙


제 1 조 (명칭) : 본회는 재독한국여성모임이라 칭한다. 

제 2 조 (소재지) : 본회의 본부는 유럽지역에 지부를 둘 수 있다.

본회는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어떠한 형태도 거부하는, 궁극적 인간해방을 구현하기 위한 본회의 행동방향을 

민주적 원칙에 의해 실천해 나감을 목적으로 한다.

제 2 장:  회   원

제 4 조 (자격) : 본회의 목적을 찬동하는 모든 한국여성을 회원으로 한다.
제 5 조 (가입) : 가입절차는 각 지역회에서 결정하며, 지역조직에 소속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대표회에서 결정한다.  
제 6 조 (권리와 의무) : 1. 모든 회원은 의결권, 선거권, 피선거권을 가진다.  2. 모든 회원은 회칙을 지키고, 회비를 

내며, 본 회의 모든 사업과 활동에 적극 참여할 의무를 가진다.


제 3 장:  구   성


제 7 조 (기구) :  본회는 각 지역의 특수한 조건에 따르는 지역의 자치성을 기반으로 하여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다음과 기구를가진다: ㄱ. 총회 ㄴ. 지역회 ㄷ. 대표회
제 8 조 (총회) :  1. 총회는 모든 회원의 의사를 총괄하고 본회의 기본방침 및 회칙개정 등 중요사항을 논의 결정한다.  

2. 총회는 지역회에서 선출한 대표회 임원을 동의통과하며 대표회의 활동상황을 검토하는 기능을 가진다.  

3. 총회는 매년 한번 정기적으로 열리며, 임시총회는 회원의 1/4 또는 대표회 임원 2/3 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 

열릴 수 있다. 

4. 총회는 모든 회원으로 구성되며, 개회 정족수는 최소한 1/3의 참석으로 개최할 수 있고 결의사항은 출석회원 

과반수의 찬성을 원칙으로 한다. 단지 회칙개정 등 특별히 중요한 사항은 전 회원의 1/2, 출석회원 2/3의 

찬성으로서야 만이 결의된다.                                         
제 9 조 (지역회) :  1. 지역회는 본회를 구성하는 기본조직 단위로서 지역의특수성에 따른 활동과 사업을 자치적으로 

해 나간다. 

 2. 지역회는 회원의 가입 및 징계절차를 스스로 규정한다.  

3. 지역회는 대표회 임원을 선출하며, 선출인원수는 지역규모에 따라 가감될 수 있다.  

4. 지역회의 단위는 다음과 같으며, 사정에 따라 대표회가 개편할 수 있다 (괄호 안은 대표인원수)
   지역 1: Berlin (3)
   지역 2: Hamburg, Kiel (2)
   지역 3: Goettingen, Hannover (2)
   지역 4: Koeln, Düsseldorf, Bonn(2)
   지역 5: Bochum, Muenster, Duisburg (2)
   지역 6: Hessen (2)
   지역 7: Heidelberg, Stuttgart, Tuebingen (2)
   지역 8: Muenchen (2) 

제 10 조 (대표회) :  

1. 대표회는 각 지역의 활동을 교환, 조정하고 본 회의 과제를 상호분담하며, 총회에서 결의된 사항 및 전반적인 

사업과 활동을 계획 실천해 나가는 본회 집단적 대표기구이다. 

2. 대표회는 각 지역에서 선출된 임원으로 구성되며 업무분담은 자체 내에서 구성, 결정한다.  

3. 대표회는 3개월에 한번씩 정기적인 모임을가지며 임원의 임기는 1년으로 한다. 

4. 대표회 임원은 경우에 따라서 임기 중에라도 자격을 상실 당할 수 있다.

제 4 장: 재   정

제 11 조 (회비) :  

1. 본회의 재정은 회원의 회비와 찬조금으로 충당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기타 수입금은 대표회가 결정, 보충한다.  

2. 회비는 각 지역회에서 결정하며 그 중 일부의 액수는 전체활동의 비용으로 사용한다. 

제 12 조 (회계년도) : 본 회의 회계연도는 정기총회에서 다음 정기총회까지로 한다.

제 5 장: 부   칙
 
제 13 조 (회칙해석) : 회칙해석상 의문점이 있거나 세칙의 필요성이 있을 때는 대표회의 해석과 결정에 따른다.

제 14 조 (회칙의 효력발생) : 이 회칙은 통과된 즉시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통과 일자     1978년 9월 17일

재독 한국여성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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