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주년 기념행사 사진 제 1부, 2008년 빌레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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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주년 기념행사 사진 제 2부, 2008년 빌레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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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회 12.10.2012.pdf

개회                                                                                     안차조



친애하는 손님, 동지, 그리고 여성모임 회원님들,

바쁘신 데도 불구하고 먼 길을 오셔서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신 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재독한국여성모임 30주년 기념행사를 하게 되어

너무 감개무량하고 가슴이 뜨겁습니다.


돌이켜 보면 대부분의 우리 회원들은 완고한 유교사상이 지배적이던 사회와 가정환경

그리고 6.25 전쟁 후의 가난 속에서 유년 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낸 세대들입니다.

희망을 가슴에 한 아름 앉고 젊은 나이로 이억 말리 이곳에 와서 학업 또는 직업전선에서

열심히 뛰면서 재독한국여성모임을 발족시켜 사회의 부조리 속에서 자신의 권익과

억압받는 여성들의 권익을 옹호, 대변하기위해 열정을 부었습니다.

자신들의 의식을 성장시키는 학습은 여성모임 창립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공동학습 세미나를 하면서 그것을 행동으로 우리들의 목적을 실천 해 왔습니다.

우리는 모국의 독재 경제 개발정책 아래서 엄청난 착취와 비인간적인 환경과 노동조건

아래 투쟁하던 노동자들과 연대, 그리고 김대중, 문부식, 김현장 등의 구명운동을 하기위해

독일의 거리를 뛰어다니면서 전단지를 뿌리고 시위를 했습니다.

투쟁하는 한국노동자들과의 연대를 위해 모금운동을 벌렸고 또는 음식을 만들어 팔아

기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일을 할 때 마다 우리들의 남편과 친구들은 독일어 문건을 만드는 일을 도왔고

남편들은 혼자서 살림살이와 아이들을 돌 봐야 할 때가 허다했습니다.

여성모임 한 회원의 경우는 “여성모임에 갔다 저녁 늦게 집에 돌아오니 남편이 이부자리를

문밖에 내 놓았던 경우도 있었고 또 한 회원의 경우는 밤이 늦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내를 염려하여 경찰에 행방불명자로 신고를 하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하여 투쟁하면서 재유럽오월민중제를 함께 이끌어 오는

재유럽민주단체들과의 연대가 지금까지 계속되는 동지애에 감사를 표합니다.


투쟁하는 한국여성노동자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의 탁아소운영 활동에 쉼 없이 연대

해주신 terre des hommes와 terre des femmes 단체를 잊을 수 없으며,

여성모임의 공개행사와 한국의 여성전화 설치운영을 위한 Stiftung Umverteilen 의 지원과,

녹생당 여성재단(Frauenanstiftung)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보상을 위한 활동,한국 이리공단 후레어 훼션의 

연대투쟁에 후원 해 주신 Evangilisches Missionswerk in 

Suedwestdeutschland 의 여러분과,베를린 일본여성회의 동지들, 또한 우리가 매년 2번씩 

이곳 빌레펠트에서 세미나를 할 수 있도록 재정지원을 해 주시는 AKE-Bildungswerk 여러분,

우리들의 친정집처럼 와서 자유롭게 한국음식을 해 먹고 밤새우며 놀 수 있도록 배려

해주시는 Naturfreundehaus 여러분, 그리고 여기 열거하지 못하는 모든 제 연대단체들에게

이 자리에서 깊이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의 준비에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30년이란 오랜 시간동안 항상 격려 해 주셨던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고 즐겁게 이 잔치를 같이 만들어 갑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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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Jahre Koreanische Frauengruppe in Deutschland.pdf

30 Jahre Koreanische Frauengruppe in Deutschland


Sehr geehrte Damen und Herren, liebe Freunde,


wir feiern den 30. Geburtstag unserer Koreanischen Frauengruppe in Deutschland

und blicken zurück auf viele positive Erinnerungen und wichtige Aktivitäten, die wir

ohne Hilfe und Unterstützung nicht oder nicht in dem Umfang hätten durchführen

können. Gerade für uns Migrantinnen war und ist es stets ein Gefühl der Wärme,

nicht allein zu stehen. Hierfür möchten wir Ihnen noch einmal von ganzem Herzen

danken.

30 Jahre koreanische Frauengruppe in Deutschland sind auch ein willkommener

Grund mit allen denen zu feiern, die uns auf unserem Weg begleitet haben.

Wir freuen uns, wenn auch Sie, als eine uns in besonderem Maße verbundene

Organisation, mit uns feiern und möchten Sie deshalb herzlich zu unserer

Geburtstagsfeier vom 10. Oktober 2008 bis 12. Oktober 2008 in Bielefeld-Ubbedissen

einladen. Die detaillierte Einladung fügen wir in der Anlage bei und würden uns über

Ihr Kommen freuen.


Mit freundlichen Grüßen

Mitfrauen der Koreanischen Frauengruppe in Deutsch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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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2008.10.1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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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nnerungen einer Tochter.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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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 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며, 독일에 우리 문화를 알려왔던 재독한국여성모임이 지난 10 일(현지 시각)

창립 30 돌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빌레펠트의 토이토부르크 숲에 있는 휴양소 나투어프로인데하우스에서 10~12 일 약 100 여명의 

회원과 하객이 모인 가운데열렸다.

조국남 재독여성모임 전 대표는 그동안 재독한국여성모임의 활동을 “외국에서 여성 이주민으로서 정체성 찾아가기”라고 

설명한 뒤 “손님노동자로 독일에 와서 의료분야에 기여했고, 독일의 다문화 사회 형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소감을 밝혔다.


      이날 회원들은 지난 30 년 동안 치열하게 살아온 세월을 돌이키며 감회의 눈시울을 붉히는 한편, 한국인과 독일인이 함께

구성한 풍물놀이와한국 고전무용 공연을 보며 기쁨을 나눴다.

재독한국여성모임은 1977 년 초 경제 위기로 독일 병원들이 재독 한인 간호사를 강제해고·송환하는 사례가 늘자, 이에

            대항하는 한인 간호사들이주축이 돼 꾸려졌다. 이들은 지난 30 년 동안 한국의 민주화운동 지원을 비롯한 수많은 활동을

            펼치며 독일 내  이주민 단체로 자리매김했다.


90 년대에는 신나치의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며 독일 내 여러 비정부기구(NGO)들과 연대했으며, 

최근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해 국제단체와 연대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회원인 최선주씨는 “앞으로 다른 이주민 단체와 한인 2 세, 독일인들과 공통의 관심사를 찾아서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juyeon@gmx.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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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신문 기사.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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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한국여성모임 30주년 생일잔치에 다녀와서.pdf



재독한한국여성모임 30 생일잔치에 다녀와서                류 현옥


Berlin Bahnhof Zoo 앞에서 생일잔치 장소로 운행할 버스에 오를 그 순간 까지 내 마음은

뒤숭숭하여 생일잔치 에 가는 기분같지가 않았다

나는 1984 년 귀향길에 오를 때까지 이 여성모임에 들어 있었고 1987 다시 이곳에 살기 시작한후로

멀리서 뜸뜸이 소식을 들어온 X 회원이기에 이렇게 초대받아 주체측에서 대절한 버스에 뻔뻔스럽게

올라서는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렷기 때문이다.

하나둘 아는 사람이 버스에 오르면서 나의 이마음을 감지하지 못한체 반갑게 인사 를 했다.심지어

몇몇 회원과는 뜨겁게 끌어안기 까지 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나와 같이 초대된 생일손님으로 버스에 타게된사람이 있다는것을 확인하게 되었고

버스가 잔치장인 Bielefeld 에 도착하기도 전에 한식구가 된 느낌이었다.

나의 이 마음을 틀어놓고 이야기 하자 잔치준비를 한 회원중의 한사람이 ‚ ’’무슨 소립니까 !? 우리는

이렇게 소문내어놓고 오는손님 없이 우리끼리 앉아 있게 될까봐 얼마나 걱정했는데……시간내에

주셔서 감사합니다 „ 했다

무슨잔치든 손님없이는 성립될수가 없단다. 이렇게 솔직하게 이야기 해주니 마음이 푹 놓였다

이말 한마디가 재독한국 여성모임의 특성을 한꺼번에 다표현하고 있다 . 둘러서 얼렁뚱단하게

상대방이 듣기 좋으라고 만 하는 말이 아니라 동시에 마음속의 근심을 숨김없이 다 토해버리는 것이다.

이 여성단체는 탄생부터가 그랬다. 커피잔들고 침목하자는 단체가 아니라 자기 의식화 와 정체성 을

찿자는 데서 시작했다. 초기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독일정부에 순종하지 않겠다는

투쟁정신을 기본으로 이루어진 단체이다.

조국의 민주화 운동에가담하고 ,착취당하는 여성노동자 의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고 아직다

성숙하지도않은 젊은 나이에 일본정부에 끌려가 그들의 잔인한 군인들의 위안부가된 우리의

할머니들의 한을 같이 노래하고 용서받을수 없는 그들의 무도함을 폭로한는 운동에 가담한 단체이다.

그래서 이단체는 피로한 단체이다. 여기서 피로하다는것은 지쳤다는 육체적 피로가 아니라 끈임없는

긴장과 진진한 노력을 요구하는 즉 단체의 목적을 위해서는 융화를 중요시하지않는다는이야기다 .

그날 회원들이 많은 시간을 소요한 준비로 완벽하게 3 일을 끝낸 이생일잔치 장에서 자주 들을수

있었던 „구회원“ „현직회원“ 새로들어온 „신회원“ 등의 표현들이 이 단체의 역사를 이야기해준다.

마치 맨발로 돌길을 걸어온것 처럼 이들은 어려운 상황에 유독 어려운 일만 찿아서 강행한

여성용사들이다. 이 강인한 단체 정신이 이들을 이끌고 30 년살이되는오늘날에 이른것이다.

이점에서 가장중요하고 단체의 근본이 된것은 여성해방 정신이라고 봐야할것이다.

동원된 남편들의 등에 아이들을 업혀서 문밖으로 내보내고 여성들만 앉은자리에서 여성들 끼리만

통하는 말로 여성단체의 구조를 이루었다. 조국을 떠나와 사는 한인 여성들의 아픈마음들을 담아

전달하는 우리여성 전유( Alleinbesitz )의 말을 토대로 한 단체이다

그래서 누구든 이곳에 살고있는 한국여성이면 들어오는 그날로 마치 친정집 안방에 들어 앉은 것처럼

말이 통한다고 한다

이제 30 의 성인이 되었으니 단체의 방향이 앞으로 어느 길로 가야 할것인지 여유있게 남은힘을 아

껴서 오래 지속할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Vivat !!!!! KFGD !!!! Viva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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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여성모임 창립 30 주년 축전 참관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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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한국여성모임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저는 오늘 이 시기에 대해 여성모임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을 뒤 배경으로 

하여 저의 개인적인 기억들을 중심으로 말을 엮어 보겠습니다. 

저는 1985년에 독일 보쿰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빨리 많

은 거주한국인들을 사귀게 되었고 오자 마자 이미 여기서는 연극 금강공연, 여성

모임의 공장의 불빛 공연 등이 있어 자연스럽게 활동적인 분위기에 같이 휩싸여 

들어갔습니다. 

독일오기 전에 70’년대에 유신독재철폐운동, 민주화운동을 같이 하면서 동시에 

여성운동이 뒷전으로 밀리는 시기도 경험하면서 많은 생각들이 교차하기도 했습

니다. 그러다 재독한국여성모임을 만나게 되면서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즐겁기도 

그리고 적극적이기도 하다가 모임 내의 충돌 상황 때에는 고민도 많이 하기도 하

였으나 지금도 회원으로 남아있습니다. 

제가 이미 1989년에 총무직을 맡게 되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당시의 여성모

임의 내적인 상황이 반영된, 즉 여성모임의 내적인 갈등이 아직 뭔지 잘 모르는 

회원의 총무직이 그 당시의 상황을 극복하는데 좋을 것 같다는 회원들의 판단하

에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한 예가 1989년의 민협에의 가입여부 건입니다. 

여성모임 총회에서의 치열한 논쟁을 아직 잊을 수가 없습니다. 투표를 하여 아슬 

아슬한 표 차이로 가입이 결정되었으나 그 순간부터 내적인 갈등이 외형으로 확

실히 들어나게 되었다고 저는 봅니다. (자세한 해석은 여기서 생략: 한국과 독일

에서의 삶의 관계성) 

그러다 1991년 10월 총회에서 민협탈퇴를 결정하게 되면서 갈등을 종식시키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저 개인의견으로는 긍정적인 결정으로 평가합니다. 

민주화, 통일논의에의 참여여부와 아울러 여성문제로서 구체적으로 „제 2차 대전 

중 태평양 권에서 일어난 일본의 종군위안부“ 문제 건이 제시되게 되고 또한 독

일에 거주하는 한국인, 즉 이주민으로서 부닥치는 외국인 적대적인 행위와 그 정

치적 분위기 문제 그리고 2세들의 문화교육, 스스로의 독일어, 문화교육 등의 주

제들이 이 시기의 주된 사안들이었습니다. 이주민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회원들 내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관심분야를 행동으로 옮기

려 할 때 각 회원들의 의견이 다양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뒤 배경 속에서 큰 행사를 한 것을 꼽아보면, 1990년에 „파독한국간호사 

25주년 행사“를 하면서 의례적인 것이 아니라 이것이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그

리고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를 집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2

특히 왜 지금도 „재독한국간호사“라 하지 않고 „파독간호사“라 하는가?에 대해 많

은 이야기를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행사 이후서부터 지금까지의 저 개인적인 문제는 „물론 재독한국여성모임의 

주류 회원이 직업이 간호사로 여기로 이주하였지만 재독한국여성모임이 동시에 

간호사모임으로? 즉 여성모임회원의 정체성에 대해 회원들 사이에 아직도 의견차

이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우리들의 이주동기가 어떠하였던지 여기서 여성으로 만

난다고 봅니다. 

스스로의 독일어 실력을 연마하기 위해 독일어연수회를 하면서 기억하는 것은, 특

히 회원들의 자녀들은 한국말도 배우면서 서로 오랫동안 사귈 수 있었던 기회도 

되었다는 것과 재정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예를 들면 빡빡

한 거주공간을 이용하면서 시끌벅적하게 사느라고 서로 곤욕을 치르면서도 결과

적으로는 그러한 기회를 우리가 마련했다는 것에 지금도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1993년 베를린에서 „제 2차 대전 중 태평양 권에서 일어난 일본의 종군위안부

“에 관한 국제대회를 개최하면서부터 열심히 지금까지도 문제해결을 위해 여성모

임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들 스스로 „여성과 전쟁“ 그 피해자들의 

삶이 얼마나 기가 막히는가 하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대회 때 피

해자들의 증언을 들으면서 하루 종일 그냥 울기만 한 것이 기억납니다. 또한 이 

일을 하면서 한국을 36년간 식민국으로 만들었던 나라의 일본여성들과 지금까지 

같이 일하면서 서로의 만남을 기피하던 감정을 극복하고 같은 여성으로서 만날 

수 있게 된 것도 중요한 의미를 던져줍니다. 

90년대 중반에 성년으로 접어드는 자녀들을 초청하여 „두 문화 사이에서의 부모

와 아이들“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하면서 서로 다른 사회화 과정을 거친 두 세

대들이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 대하여 허심탄회하게 토론도 하고 연극도 하면서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시간도 기억에 남습니다. 

외국인 적대감정이 통독되고 나서 외형적으로 더 크게 될 때 과연 이 나라에서 

살 것인가? 하는 개인적인 질문도 하면서 동시에 그에 대한 투쟁데모에 참석도 

하고 공개서한도 열심히 써서 보내고 하던 일도 기억납니다. 

이 시기에 더욱더 공고히 된 것은 이러한 활동을 하다 보니 많은 연대단체들을 

사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혼자 활동하지 않고 같이 활동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

한 것인가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오월민중제와 제 다른 독일단체들의 후원과 연대

는 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오월민중제는 재유럽 제 민주한인단체들과의 만남의 

장소 또한 한국이주민으로서 서로 만나는 장이기도 합니다. 

1990년대의 또 한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1993년부터 모든 회원들에게 주3

소록을 나누어 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군부독재시절 소위 민주화운동을 하는 

단체의 회원들은 정보부의 사찰을 감수했어야 했기 때문에 회원의 주소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었던 것입니다. 

1990년대 말부터 여성모임의 구조변경이 현실적으로 요청되었습니다. 조직구조개

편논의가 사실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되긴 하였습니다. 그 핵심은 지역중심의 여

성모임이 아니라 총회를 중심으로 하여 개별회원들의 참여를 높이고 총무단을 강

화하여 사업과 활동을 해 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오랫동안의 조직구조개편작

업논의는 회원들이 모였다 집에 돌아 갈 때는 우울하게 만드는 시간이기도 했습

니다. „침체“라는 표현을 하면서도 계속 활동이 이어져 가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

습니다. 

2002년에 조직구조를 개편하면서 2002년 1월에는 회원들의 자선적에세이를 한

국의 시민의 신문에 연재하는 일도 하고 „여성상담전화“를 개설하기도 하였습니

다. 

2003년에는 재독한국여성모임 25년을 기록하는 기념문집과 „여성모임사진첩“을 

만드느라고 엄청난 애를 쓰기도 했습니다. 한 여름에 며칠 동안 같이 앉아 일을 

하면서 몸에 땀띠가 나던 기억도 있습니다. 또한 저의 경우 그 일을 준비할 동안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한국에 갔다 오고 아픈 가슴을 달래다 보니 제가 맡았던 책

임을 시간에 맞추어 못하는 바람에 책임추궁도 당하던 기억도 납니다. 결국에는 

했지만. 또한 49구제 날에 베를린 한 회원집에 모여 일을 하여야 하니까 그 회원

이 거기서 49제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시던 기억도 납니다. 게다가 책을 인쇄

해주는 인쇄소를 잘못 만나 그로 인해 우리끼리 싸우고 하던 기억도 납니다.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니고 명예가 생기는 일도 아닌데 미

친 듯이 이런 짓을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리고 우

리는 그런 짓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ㅎㅎㅎ 

또한 이 시기에 많은 여성모임회원들이 탈퇴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당시에는 서로의 의견과 관점의 차이였습니다. 그로 인해 당분간 서로 만나는 것

이 부담스러운 시간도 있었습니다. 오늘 여기에 이제는 비회원으로 참석한 그 당

시의 회원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여성모임 30주년을 같이 하게 되는 것에 저희들

이 서로 성장했다고 지금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은 인간사에서의 자연스

러움이라고 저는 봅니다. 같이 자리하게 된 것이 기쁩니다. 

여성모임이 아직도 비정부조직으로서 그리고 자조직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오후의 좌담회에서 많은 기억들을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유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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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한국여성모임 30년역사.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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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ramm 1.doc



Programm


Freitag, 10.10.08


18:00: Ankunft. Anmeldung


18.30: Abendessen


19:00: einander Kennenlernen


Samstag, 11.10.08


08:00-09:30: Frühstück


09:30-09:45: Eröffnung, Gedenkminute


09:45-11:15: Grußworte, Erinnerungen


11:15-11:30: Pause


11:30-12:00: 1. Vortrag: Die Koreanische Frauengruppe in Deutschland:


                                      von der Gründungszeit bis1980: Cho-Ruwwe, Kook-Nam


12:00-14:00: Mittagessen, Pause


14:00-15:00: II. Vortrag: Die Koreanischen Frauengruppe in Deutschland vom 1990 bis 2000: Dr.Yoo, Jung-Sook


III. Vortrag: Die Koreanische Frauengruppe in Deutschland heute: Choi, Sunju


15:00-15:30: Kaffeepause


15:30-18:00: Plenum


18:00-20:00: Festessen


20:00-21:00: Kulturprogramm 1: Trommelgruppe „Platzregen“, Tanzgruppe „KAYA“, Nami Morris, Bo-Sung Kim,

 

Myoung-Hyun Park


21:00- Kulturprogramm II: Nanjang


Sonntag, 12.10.08


08:30-10:00; Frühstück


10:00-11:00: Abschiedsrunde


11:00-12:00: Vollversammlung der KFG, Filmaufführung für die Gäste


12:00-13:00: Mittagessen


13:00- Abre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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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wnlo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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