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마당


-김정숙-

1980년 광주에서 대학생, 시민항쟁이 투열하던 피비린내 나든 5월!
지금 함부르크에서 살고 있는 전라도가 고향인 친구 정현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얘, 정숙아, 테레비 봤니?” “왜?” “한 번 봐봐. 기가 막히고 치가 떨릴 거야.”
난 당장 테레비를 켜 보는 순간 너무도 아찔했다. 무작정 패대는 군인경찰들, 맘대로 휘두르는 그들의 총칼질 앞에서 엎드려 있는, 질질 끌려가는 젊은이들!

이것이 과연 내 조국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가?!

눈물이 그칠 새 없이 흐르고, 흐르고 또 흘렀다.

이 젊은이들의 부모님들께선 얼마나 불안 속에서 떨고 계실까?!

얼마 후 다시 현옥이 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정숙아, 테레비 봤니? 야, 우리 이러고 가만히 있을 수가 있니? 너, 그 정 목사님 잘 알지, 그 분께 연락해보자.”
이렇게 난 처음으로 우리 나라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짧은 시일 내에 베를린을 중심으로 반 군정 시위대모를 신청조직을 위한 한독 친선회가 창립되어, 재유럽한인들의 많은 민주주의단체모임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고, 광주항쟁을 위한 재유럽민주연합단체가 창설되었다.

 이때 많은 한국 남성 민주인사와 여성으로서 최영숙 운동권 내 선배님을 알게 되어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또 독재정권을 반대하는 한인간으로서 실로 “동지”라는 말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이후 남편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들을 갖기 위해 꼭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는 친구인 박재신 사회학박사의 권유로 베를린의 재독한국여성모임에 참석하게 되면서 우리 모임의 회원이 되었고, 잠시 베를린구역의 대표를 맡은 적도 있었다.

 우리 모임이 나에게 줄 수 있었던 가장 큰 보물은 우리들만이 가질 수 있는 한국말 속에 들어 있는 유머를 주고받으면서 “내 배야 찢어져라” 하고 배를 잡고 맘껏 웃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난 우리여성모임이 내 친정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친정”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면의 생각이 있다. 이것은 어쩌면 나의 엉터리 생각일진 모르겠으나, 옛날에 한번 시집간 딸이 시댁에서 쫓겨나면 집안 망신시킨 딸이라고 친정에도 돌아갈 수가 없지 않았는가! 난 우리여성모임이 이런 친정이 아니었으면 한다.
 
 1987년 내가 간암으로 죽음 직전에서 헤맬 때, 말없이 찾아와 기울 옷과 때묻은 옷을 정리해준 김은주님도 우리 여성모임에서 알게된 분이었다. 이 자리를 빌어 각별히 한번 더 고마웠어요 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 이 분 외에도 여러분들의 격려로 난 암을 친구로 사귀게 되어 진정한 친구가 생겼다. 감사합니다.
 
 1993년 세종학교를 여러분과 함께 건립할 당시 지금 교감선생님으로 계시는 김영옥님과 난  우리 모임의 회원이었기에 우린 여러 면에서 쉽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우린 아주 재미있게 열심히 뛰었고 우리 모임의 배려가 우리에겐 큰 힘이 되 주었다.

이제 6월 14일이면 세종학교 제 십 주년 개교기념일이다.

이렇게 우리 여성 모임은 나에게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마당역할을 했다.

posted by 재독한국여성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