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성들과 함께 차별 없는 사회로

-주재순-

나는 여자로 성장하면서 받은 차별대우가 나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을 항상 느끼고 산다. 거기다가 타국에 와서 받는 인간차별대우 또한 나의 정의심을 더 돋구어 주어 서로 동등하게 대우해 주고 존경을 받는 사회, 나의 삶을 만들려고 노력을 한다.

 젊어서는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 개인을 인정하고, 직위나 성, 문화 차이를 중시 않고 함께 추구하는 목적을 따라 가면 될 것이다 하면서 노력을 했다. 그러나, 서로 이해하는 것보다는 오해, 의사소통 문제가 자꾸 일어나는데, 개인 차원이 아닌 사회체계와 교육성장문화차원에서 오는 문제가 많은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차별대우에 예민하다보니 당연히 나의 경험과 거기에 따라 오는 감정을 분석하고, 왜 이런가, 어떻게 하면 이런 문화를 없앨 수 있을까 궁리하게 되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해소하는가 궁금하고 같이 싸울 수 있는 동지를 찾게 되었다. 또 같이 모여 힘을 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재독여성모임에서 뜻이 맞는 여성 동지들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었는데, 단체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여성에게 별로 친절하게 “어서 오세요” 하는 태도가 없었다. 그래도  마음이 맞는 여성들이 있으니, 대화를 할 기회나 씩씩한 동지들을 보는 것이 좋았고, 여성인권운동, 특히 한국여성노동자의 인권운동과 연대하여 힘을 보태는 것이 나에게 중요하였다.

 한국경제가 발전이 되어 가면서 노동조건이 향상되고 사회가 점차적으로 민주화로 진전이 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여기서의 나의 삶, 이주민여성으로의 역할이 나의 관심을 붙잡았다. 왜 내가 다른 문화권에서 왔다고, 얼굴이 다르게 생겼다고 괄시나 천대를 받나, 나의 인권은 어디로 갔나? 어떻게 이런 사회적 편견을 배제할 수 있는가란 생각을 했다. 나는 노동이주민으로 와서 학업을 할 수 있는 체류허가를 받았는데도 독일남자 친구가 결혼을 한다는 설명서를 써야 했을 때 너무나 치사하고 모욕이라고 반항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관청뿐만이 아니라, 동네에서도 괄시가 많았다. 그래서, 마음이 맞는 독일 여성들과 그룹을 만들어 여성을, 특히 이주민여성을 무시하는 사회구조, 법, 사고방식과 행동을 지적하는 활동을 했다. 그러다 보니 여성이라는 칭호 아래에서 서로 단결하자였는데, 여성 운동권 아래에서도 다른 문화권에서 온 여성들에게 많은 편견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 눈에 띠고, 다른 이주민여성들의 경험을 많이 듣게 되었다. 오랫동안 훼미니즘은 북미, 서유럽여성의 전용으로 생각을 하고 여기서 벗어나는 견해는 미비한 발전이 더 필요로 하는 것으로 대접을 하였다. 훼미니즘의 정의가 다양하다는 것을 인정하기에는 시일이 필요했다.

 특히 많은 독일 여성운동가들이 자기들도 다른 문화권의 여성들을 동등하게 취급 안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인간차별 문제에 자기들의 역할을 분석하고 책임을 추구하게까지는 많은 토론과 언쟁이 필요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동시에 이주민 1, 2세, 흑인 여성, 피난민, 유태인 여성들과 다른 그룹(ELISA)을 만들어 인간차별반대 운동을 했다. 우리를 위한 회의를 조직하고 어떻게 우리 요구를 공개석에, 정치인들에게 효과적으로 반영시키는가 등등을 궁리하면서 실행하였다.

 그러니까 나는 한 동안 동시에 세 개의 여성그룹에서 활동을 했다. 재독여성모임, 국제여성그릅, ELISA (im Exil Lebende Immigrantinnen und schwarze Frauen in Aktion) 단체였다.

 이렇게 그룹활동을 할 때에는 상담도 했지만 이론과 이상추구가 대부분이었다. 직접 로마사람들과 일하면서 나는 나의 경계를 체험했다. 어디를 가도 인간대접을 못 받고 괄시 당하고 쫓기는 로마사람을 위한 단체에서 그들의 짓밟은 인권을 되찾는 운동이었다. 정치적으로 나의 정의감도 충족시키는 일이었지만, 내가 독일인도 아니고 로마 사람이 아니라 중간에서 끼어서 있는 나의 역할이 꽤나 어려웠다. 로마계의 문화, 역사, 사회배경을 많이 알게 되었고 훌륭한 사람도 많이 알게 되었지만 몇몇 로마사람들한테서, 특이 나의 도움을 받은 사람한테서 나의 생김새를 놀리고 모욕하는 언사가 무의식적으로 나왔다. 처음에는 이들을 이해하고 무의식적으로 한 언사에 신경을 많이 안 썼다. 이런 일이 자주 번복되다 보니, 아무리 정치적으로 연대감이 필요하더라도 나의 마음이 자꾸 이들한테서 멀어져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계약기간이 끝날 때까지 일은 하였으나 진심에서 우러러 나는 것은 아니었다.

 이 기간은 나 개인한테 꽤나 어려운 상황이었다. 정신적으로 극복해야할 것이 많았다. 이때 나는 여성모임의 총무직을 맡아 즐겨하면서 만족감을 받고, 또 인정도 받아 나의 바닥에 기어있는 자신을 다시 일으켜 주는 힘을 받았다.

 지금 일하고 있는 데는 이주민 여성상담소 agisra인데 이주민여성의 인권운동 단체이다.

우리 팀은 모두가 이주경험이 있는 여성이다. 이 나라에서 겪는 인간차별, 성차별의 반대운동과 우리의 존중받는 위치를 찾는 일을 하면서 독일여성뿐만이 아닌 세계여성들과 네트워크를 하면서, 서로 존중하는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꿈이다.

  한국 여성부에서 재작년부터 한민족 여성 네트워크 회를 열어 해외에 있는 한민족여성과 한국에 있는 여성과 연결을 해주었다. 작년에 여기에 참석을 하였는데, 한국에서 참석하신 분들은 경제, 사회평화라는 주제 아래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으나, 해외에서 오신 여성들은 활동분야가 꽤나 다양하다. 이 회의에 참석하면서 나의 생각은 자꾸만, 한 가지 의문에 뱅뱅 돈다. 이리 다양한 여성들이 한민족이라는 칭으로 어떤 네트워크를 할까? 회의 자체를 네트워크로 생각하는 것인가? 같은 민족이라는 이름 아래 네트워크를 하려면 내용을 중심으로 네트워크 할 기회를 주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외국에서 적응하고 살면서 어떤 어려움을 극복해야 되는지, 자신들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 알고 싶은데 그럴 시간이 없었다. 아쉬웠다.


posted by 재독한국여성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