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의 경험을 나누며 모든 회포를 풀 수 있는 곳

-박재신-

1970년 5월 6일 내가 베를린에 도착했을 때는 어둡고 춥고 배고플 때였었다. 그때 시립 우르반 병원에서 꽃다발로 날 환영해 주었고, 운 좋게도 병원의 공사를 마무리되지 않아 3개월 동안 괴테 어학원에서 언어연수만 해도 되었다. 독일에 대한 사전지식은커녕 독어 하나 제대로 읽지 못하고 소양교육/반공교육만 받은 우리는 헬레나라는 간호사의 도움으로 무난하게 지낼 수 있었다. 시립병원은 거의 30%이상이 한국인 간호사로 운영되는 상황이어서 언어소통은 그런 데로 되었다.

 그런데 스위스의 비타 생명보험회사는(Vita Versicherung) 우리를 속여 생명보험을 들게 하여 장기동안 머무는 이에게는 해를 끼친 경험이 있다. 모친께서는 내가 파독될 당시 가난을 한탄하시며, 우리 귀한 장녀를 3년 식모살이 보내는 심정이라시며 꼭 3년 후 돌아오라는 부탁을 하셨다. 그러나 그 3년이 33년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때 나보다 5년 일찍 도착한 이들도 있었다. 지금은 보건소인 그때 기숙사에서는 50여명의 한국간호사만 살았다. 나는 좀더 많은 독일인과 만나서 문화, 언어, 풍습 등을 알고 싶어 그곳을 떠나고 싶었다. 그 일은 나중에 교회를 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게 되었다.

 나는 재독 한국여성모임을 나의 정치적 정체성을 실현하는 장으로 생각하고 있다. 여성모임이 억울한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해주고, 그들과 함께 느끼고, 행동하는 것은 여성모임의 당연한 몫이라고 나는 본다. 그리하여 88올림픽 전에 여성노동자를 초대하여 한국의 여성노동자의 상황을 알리는 일을 대학생들과 함께 추진하여 홍보가 잘 되었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정신대문제대책도 일본여성회와 함께 국제회의를 추진하여 자랑스럽게 여성모임의 능력과 귀한 뜻을 세계에 알리고 일본의 식민지 만행을 국제여론에 고발하는 기회를 가졌다고 본다. 그 당시 몇몇 회원은 나의 일 하는 방법에 대하여 비판한 줄로 안다. 그러나 나의 느낌은 인신공격으로 받아들일 망정, 일 중심으로 그냥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누가 나에게 “왜 그렇게 욕먹으면서도 항상 일하느냐”고 했다. 나에게 아무리 욕해도 욕은 안 먹으면 그만이고, 일을 하지 않으면 구설수에 오르지도 않는다고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내가 학업에 충실해야할 시기와 남편의 사망으로 힘들었을 때 나는 여성모임에 나가 일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러한 때 회원 중에서 날 포옹할 능력이 있는 사람도 없어 보였다.

 어둡고 춥고 배고플 때 파독되어 젊음을 즐기지 못하고 그저 일만으로 만족하며 살아온 게 어쩔 때는 억울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하여준 독일사회에 감사한 생각이 든다. 물론 그 길을 함께 한 여성모임은 애물단지이기도 하다. 여성모임 초기에는 세미나준비에다 밥도 해야지, 새 회원상담도 소홀히 하지 않아야지, 하며 그 주말 세미나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며칠이나 몸살을 알아야 했다. 그래도 짜증나지 않았고 남편인 Horst 또한 좋은 동반자로 항상 대화로 날 도와주었다. 나는 한 가지 일에 빠지면 거기에 미쳐 다른 것 모두 잊는 형이라서 Horst한테 전화할 겨를도 없었다. 그러나 항상 어떻게 알았는지 날 데리러 온 그를 보고 난 행복한 줄도 모르고 행복했었다. 

 한 개인의 성장과 자립은 한 단체는 한 성원, 성원이 모여 이루어짐으로 그 단체의 자랑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성모임에서는 가끔 그렇지 못함을 경험 할 때가 있다. 나의 경험은 어렵게 만들어 낸 책을 축하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망신을 주는 태도는 누어서 침밷는 꼴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여성계에서 명망 있고 학계에서 인정받은 유명출판사에서 10년을 넘게 일하고 연구한 책이 나오는데, 나의 의견이나 뜻을 묻지도 않고 이의 서안을 보낸 건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언어의 콘텍스트에서 이해 할 수 있는 뻔한 것을 가지고 “여성회 창립을 나 혼자 했다”고 썼다는 항의라고... 내가 서운한 점은 나를 그 정도밖에 모르는 여성모임의 나에 대한 태도였다. 나는 지금까지 여성문제를 당당하게 여성모임을 통하여 해결하려 노력하였고, 정치적 정체성을 실현하려 힘썼다. 그리고 성공으로 추진하였다고 본다. 내 개인의 명예나 권익을 위하여 여성모임을 통하여 한일은 없다.    

 우리 모임이 앞으로 더 커질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 나오는 회원과 그 전에 열심히 활동했던 성원들을 동원하여 옛정과 그 뜻을 모아 공동의 경험을 나누며 모든 회포를 풀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 과제로 보인다. 우리는 열심히 살았다. 그러기에 그 살아온 삶을 다시 정리하는 마음으로 만나면 후배들에게 또한 한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적지 않다고 보다.

 이제 어둡고, 춥고, 배고프던 우리 생활의 경험들은 행복함과 풍요로움으로 바뀔 수 있으며, 우리는 그럴 권리가 있다. 이제 모든 것을 용서하여주고, 또한 용서받고 싶다.

그리고 모든 이 들과 함께 행복하고 싶다.


posted by 재독한국여성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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