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적 여성들의 열린 별장                                   


-강여규-


2003년 8월 7일부터 11일까지 재독한국여성모임 25주년 기념문집과 자료정리를 위해 편집위원들이 우리 집에 모였다. 40도까지 올라가는 살인적 더위가(이 더위로 유럽연합에는 만 여명의 노인들이 사망했다고 한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극성이었다. 더워 죽을 지경인데 불때서 음식까지 만들어야 하니 부엌은 말 그대로 한증막이었다. 정말 에어컨 생각이 간절했고, 이럴 때는 전화 한 통으로 짜장면이며, 콩국수 같은 음식을 시켜먹을 수 있는 한국자본주의의 서비스업이 얼마나 그리웠던지 모른다. 이런 와중에 여성모임 회원들은 고물 '메이드 인 차이나'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하면서 머리 맞대고 열심히 일을 해 나갔다(몸에 땀띠가 난 회원도 있었음). 우리에게 밥해준다고 사진 자료와 음식거리를 장만해 달려온 회원도 있었고, 그 더위에 싫은 소리 한 마디 없이 부엌당번을 자청한 회원도 있었다. 나는 이런 모임이 있을 때 다른 회원들이 보여주던 자상한 주인으로서의 역할은 엄두도 못 내고,'각자 알아서 편한 대로 하시옵소서!'라는 몰염치로 일관했다. 그런데도 회원들이 섭섭하다는 눈치 한 번 보내지 않는다. 아니면 내가 눈치 안 보려고 해서 못 보았나? 


 아무튼 여성모임 회원들 참 지독하다! 그 더위에 하이델베르크 시내 구경 한 번 제대로 하지 않고, 일한다며 집에서만 떡을 치다니. 그런데도 한 편으로 나는 즐거웠다. 아무리 일 때문에 회원들이 만났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일을 진행시킬 수 있었던 것은 만나는 기쁨이나, 편안한 마음의 교류가 바닥에 깔려 있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것이 여성모임이 주는 독특한 즐거움이라고 느낀다. 일은 그것을 하는 사람들끼리 마음이 맞지 않으면 괴로움의 근원이다. 최근 4, 5년 여성모임에 좀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나는 회원들과 더 깊이 사귈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되었고, 그래서 나름대로 따뜻한 정도 느낀다. 


 그러고 보니 내가 여성모임의 회원이 된 지도 벌써 13년이다. 지금이나 처음이나 회원 중에서는 나이가 적은 편에 속하는 나는, 모임에 가입을 할 때, 나이의 권위를 주장하려는 '나이 값'하는 회원이 비교적 적은 것에 안심이 되었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성격이 비딱해서인지 한국의 일반적 행동양식인, 윗사람-섬김을 잘 못하고, 아래-사람-건사도 잘하지 못한다. 사실 별로 하고 싶지도 않다. 모두에게 인간 사이의 기본 예절이면 족하지, 우리가 무슨 봉건 사회나 씨족 사회에 사는 것도 아닌데, 언니, 오빠, 동생, 어머님, 아버님의 가족 칭호로 남을 불러야 한다는 말일까? 아무튼 여성모임에서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씨'로 통일해 부르는 것은 매우 바람직해 보였다. 그리고 나는 유감없이 회원들의 이름에 씨를 착착 붙이며 부르곤 했다.      


 그러나 내가 몸담고 있던 13년 동안 여성모임 안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회원의 수가 현격히 줄었다. 그리고 회원들 사이의 갈등도 여러 면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여성모임의 정체성, 여성모임의 방향 설정 등에 관한 이야기도 자주 거론되었고, 최근에는 여성모임의 조직개편에 대한 시도도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어쩌면 한 조직의 성장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변화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여성모임의 이런 변화는 여성모임의 태생적 한계나, 지금까지의 활동 방향이 가진 내재적 문제에서도 온다고 생각한다. 


 여성모임은 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한국과 관련된 활동을 많이 해 왔다. 그 근저에는 한국의 사회-정치-경제 현상에 대해 일반적으로 좌익성향이라 부를 수 있는 의식과 태도가 깔려 있었다. 그래서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에 대한 연대 및 남녀평등사회를 위한 여성조직과도 연대를 해왔다. 그리고 독일에서 자라는 한국 이세들의 정체성 확립이나 한국 사회를 제대로 이해시키기 위한 문화활동과 한글교육 등에도 관심과 정열을 쏟았고, 정신대 문제를 독일사회에 알리고, 세계적 연대를 위해 활동하기도 하였다. 또한 독일 통일에 자극을 받으며, 군사독재정권이 그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분단상태를 반공이데올로기로 경직시키는 것에 대항하는 통일 운동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로 이어진 한국 민주화의 점진적 성공은, 여성모임 내부에서도 한국과의 연대운동이 이제는 방향을 바꾸어야 하며, 목표의 재정립도 필요하다는 의식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첫째, 과거 군사독재 시절과는 달리, 우리가 무엇을 위해 한국과 협력을 할 것인지, 그리고 한다면 어떤 단체들과 협력을 해야 하는지가 불분명해졌다. 둘째, 여성모임 회원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과거처럼 투쟁형식의 운동을 하는 것에 점차 회의를 갖게 되었고, 우리가 지금까지 지나치게 한국과 관련된 활동을 하면서, 막상 우리가 몸담고 살고 있는 독일 사회에서는 소외된 것이 아닌가란 질문들도 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념적 운동도 좋지만, 우리 회원들 사이의 결속이나 깊은 관심, 또는 동지애 같은 것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 않은가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런 모든 질문, 회의가 타당하며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성모임은 이런 질문을 하면서 서로 충돌도 하고, 머리 맞대고 고민하기도 했다. 결국은 여성모임의 결속과 존속을 위해 구조의 변경이라는 힘든 일도 해냈다. 아쉽게도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회원들이 탈퇴를 했고, 각자의 성향에 따라 자신이 계속 참여할 단체들을 찾아가거나 새로운 조직에 가입하기도 했다. 회원수가 줄어드는 것이 물론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조직이나 단체는 영구불변한 것이 아니며, 필요에 따라 변화할 수도 있어야 한다. 


 나는 탈퇴한 회원이나 남아있는 회원이나 모두 자신이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었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자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탈퇴한 회원들이 다른 단체에 들어가 활동을 하는 것도, 가령 그 단체의 성격이 우리에게 의문의 여지가 있는 것이라 할 지라도 일단은 지켜보자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주력해야 하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여성모임을 '어떻게, 어디로 이끌어 갈 것인가'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25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며, 그 동안의 활동과 노력들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일은 의미가 깊다. 정리를 한다는 것은 어떤 회원의 좀 냉소적인 표현처럼 무덤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반성을 통한 재정립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글을 시작할 때 받은 주제는 '여성모임과 나' 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여성모임 자체가 어떻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고, 회원들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그런데 나를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요? 그런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자기야, 나 짝 사랑하기 싫어!). 그래서 마음에 드는 회원과는 앞으로도 좋은 친구가 되고 싶고, 아직 친하지 못한 회원들과는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갖고, 내 삶의 행동원칙에(뭐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니 핀잔주지 마시구요) 어긋나지 않는 한, 즐겁게 함께 무슨 일이던 할 수 있다는 게 여성모임에 대한 나의 태도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여성모임 회원들에게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 우리 모두 주체적 참여자가 되자는 것이다. 수동적 자세로 관망할 것이 아니라, 내가 없으면 우리 모임에 무엇이 결여될 것이란 주인의식을 가지고 여성모임을 함께 꾸려나가자는 것이다. 물론 개인의 상황에 따라서 적극적으로 여성모임의 일을 맡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으로라도 주인이 되어 있으면 언제든 시간의 여유가 생기며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여성모임의 미래는 열려 있다. 모든 회원들은 각자가 모임에서 바라는 것을 가지고 와서 다른 회원들을 설득하시라. 자신이 얼마나 멋진 사람이며, 자신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멋진가를 보여 주시라. 


우리 모두 서로에게 기대해 봅시다.



posted by 재독한국여성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