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터, 새로운 무늬



-조국남-


가끔 나는 한 인간의 삶의 모습을 구체화시켜서 알록달록한 색실로 짜 올라가는 직물이라는 생각을 떠올린다. 그렇다면 인간이 태어난다는 것은 이미 날실이 팽팽히 죄어진 베틀 앞에 마주 앉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 각 개개인이 자기의 인생이라는 천을 짜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느 종류의 그리고 무슨 색상의 실이 선택되어서 어떤 무늬가 짜여 나올까 하는 호기심도 함께 천에 박힌다. 


 여성모임은 내가 독일 사회에서 한 이주민여성으로서의 직물을 짜나가는데 늘 새로운 무늬를 제공해 주었다. 조직의 사업과 활동 속에서 얻는 성취감이나, 회원들 간에 맺어지는 우애, 한국에서 온 이주민 1세 여성으로서 찾아가는 나의 위치와 입장, 아이들의 성장, 나 스스로의 자립 등의 셀 수 없는 문양들은 견본이 없이 즉석에서 짜야하기에 베틀의 북을 이쪽 저쪽으로 재빨리 던져가며, 사이사이마다 바디로 꼭꼭 빗어가며, 발로는 디뎌가며, 한 눈 팔 틈이 없이 그 과제를 위해 모든 힘을 집중시켜야 했었다.

 

언니는 돈 벌어서 하늘에 다 뿌려버리네!“, 언젠가 한국방문 했을 때 여동생이 한 말이다. 1970년에 독일에 와서 3년간의 고용계약이 끝나자 마음 설레면서 찾아간 첫 고국방문에서부터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는 모국어와 모국(Muttersprache, Mutterland)을 익히기 위해 가족 모두와 함께, 한국이 아이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을 때는 나 혼자서, 아버지가 임종하시기 전에, 어머니가 위독하셔서,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형제 자매들이 보고 싶어서, 지금까지 십 수 번 한국을 오갔다. 독일로 향한 나의 길은 낯 설은 타향 길에서 시작해서(부모님과 헤어지면서 "잘 다녀오겠습니다!" 라고 인사했었다.) 손님으로서의 왕래 길을 거쳐서(“저 다시 왔습니다!/저 다시 독일로 갑니다”) 이주민생활이 30여 년이 지난 오늘은 종래의 왕래길이 이제는 나의 귀향 길로 변했다(저 이제 집으로 갑니다. 다시 한국에 들리겠습니다!). 


 내 나이가 쉰 중반이 되었다. 독일에서 한국으로 향한 길이나 한국에서 독일로 향한 길 이 모두가 이제는 나에게는 고향으로 가는 길이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짜 내린 직물의 무늬가 서로 연결이 되면서 새로운 문양을 만들어 가는 것이 이제야 내 눈에 들어온다. 알록달록하게, 단순하게, 때로는 복잡하게 매듭이 맺힌 채. 이 모두가 

필연적이었음도. 여성모임은 나의 독일에서의 성장시기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 되어있다. 인정이 샘솟는 

곳, 배움의 터, 인생의 학당으로.   


 올해는 여성모임이 창립 25주년을 맞는다. 여성모임의 창립회원으로서 지난 25년을 되돌아보면 여성모임은 창립취지에 충실하게 회원들이 민주주의적이고 자주적으로 조직을 이끌어 왔다. 이주민 여성조직으로서의 실천한 정치 사회적인 사업과 활동의 성과는 인간사회에 여러 형태로 기여하였고, 여성모임회원들에게는 산 경험으로 집합되어 이주민여성으로서 우리의 미래를 새로이 창조하는데 기반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10년 후쯤 내가 짜나가고 있는 나의 인생직물은 어떤 종류의, 무슨 색상의 씨실로 짜여 있을까? 그 때쯤 아마 나는 직장생활을 그만 두고 새로운 인생의 여행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의 고향 길을 오고가면서 어느 곳에서나 마음이 편한 자유인으로서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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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재독한국여성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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