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량과 인성으로 우리의 능력을 연마하는 곳 



-김현숙- 

 

여성모임과 나와의 첫 만남은 아마도 1977년 Frankfurt의 한 회원 집에서였다. 여성모임이 발족되기 이전이었고 독일의 아시아 간호사추방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작성하기 위해서 모였었다. 만 명의 서명을 모으기 위한 서명서를 작성하고 일을 분담하고 또한 이 사실을 각 도시마다 한국인들에게 알리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도 토론하였다.


 독일 정부와 정치 그리고 외국인법을 문제화시키며 외국인 간호사 추방에 반대하는 활동은 바로 나 자신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나의 사고방식과 지식 그리고 도덕관념으로는 정치, 경제 또는 사회운동을 하는 것은 남자들이 해야할 일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활동에 동참함을 계기로 나의 삶과 생활에 변화가 왔고 그리고 그  변화는 한 발자국 앞으로의 전진을 의미하게 되었다. 또한 나의 어려운 시절에 삶의 긍지를 찾을 수 있는 동기이기도 했다. 


 여러 분야를 주제로 한 세미나가 있었고 그에 따른 에피소드나 체험도 많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내가 여성모임회원들과 더욱 가까워진 기회가 있었다. 한국에서 '한솥밥 며칠만 같이 먹어도 팔이 안으로 굽는다.'라고 흔히 말한다. 1986년 “한국의 문화를 알자” 라는 세미나가 있은 후, 뮌헨에서 사물놀이 수련회를 하게 되었다. 뮌헨의 이월선 회원은 숙소를 제공하고, 강원혜 회원이 악기를 여성회에 기증하고, 한국에서 김영동씨를 초대했다. 낯 설은 장단을 입으로 외워가며, 꽹과리 대신 냄비 뚜껑을 두드려 가며, 무릎은 장구장단을 맞추며 열심히 배웠다. 모두 한국에서 자란 사람들이 우리 고전에 감각이 없다는 야단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함께 이야기를, 밥도 열심히 먹고, 웃는 것까지도 열심이었다. 그러다 보니 정이 들고 더욱 더 가까워지는 시간들을 가졌었다. 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동지애와 형제애를 얻게 되었다. 


 또 한가지 숙연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일은, 베를린에서 있었던 50주년 해방기념행사이었다. 여성모임과 정신대후원조직들이 주최한 이 행사에는 소련, 네덜란드, 중국, 북한, 한국 그리고 일본에 살고 있는 정신대와 관련되었던 여러 나라의 여성들을 초대를 했었다. 소련과 중국에서는 정치상황 때문에 아마 참석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행사에 참석하셨던 고령의 여성들은 그 시대의 역사와 정치의 재물이 되어 당했던 만행들을 하나하나 폭로하시면서 분노를 하셨다. 아픔과 눈물을 삼키시는 모습은 나에게 한 인간이 한 시대의 역사와 정치에 재물이 되는 이치를 깨닫게 해 주었다. 바로 나와 여성모임과의 관계에서 의식화작업을 시작하는 동기이기도 했다. 


 여성모임과 나는 세월이 흘러가듯 함께 어우러져 흘러왔다. 여성모임은 민주적이고 자주적이었다고 보며 특히 각 지역마다 한번씩 대표모임을 가졌던 것은 여성회를 더욱 단합시켰었고, 개인적으로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이었다. 앞으로도 노년기의 인생을 더욱더 단합과 웃음으로 서로 서로가 아량과 인성으로 그리고 따뜻한 위로를 할 수 있도록 우리의 반평생 다져온 능력을 잃지 않는 노력이 있기를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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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재독한국여성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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