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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 여성모임과 나

따뜻한 포용 속에서 누리는 연대감 -한정로-

따뜻한 포용 속에서 누리는 연대감

-한정로-

여성모임과 내가 첫 인연을 맺은 시기는 여성모임이 창립된 몇 년쯤 후였던 것 같다. Neukoelln의 한 가정집에서 만나는 여성모임에 참석하면서 첫 접촉을 맺었다. 그 뒤 나의 학교생활 시작 등으로 바쁘면서도 TAM의 모임에 간혹 참석했었다. 그 당시 회원들에 대한 첫 인상은 처음 오는 사람에게 따뜻하거나 친절하게 대하면서 적극적으로 뒷바라지를 해줄 것 같은 분위기가 적어 보여서, 마치 관청에 온 것 같은 조금 냉정한 분위기로 느껴졌었다. 그렇다고 회원이 되기를 간청하거나 설득하는 시도도 없었기에, 개개인의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의사전달이 존중되고 개개인의 입장을 중요시하는 단체라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 후 여성모임에 대한 나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일은 간호사 추방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도우면서 대단히 촉발되었다. 이것은 여성모임을 통해 간호사로 이 땅에 온 우리의 사회적 위치뿐만 아니라 나의 삶을 돌이켜보는 전환점이 되었다. 고요히 흐르는 맑은 강물이 겉보기에 내 시야에는 깨끗하고 유유하게 잡히지만 그 강물의 깊은 바닥은 맑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로써 조용히 살던 나의 삶에 작은 파장이 생겼다. 독일 사회에서 노동자로 살면서 노동자의 권리와 인권에 대한 인식을 높이게 되었다. 한마디로 이것은 나 개인의 정의심과 사회적 인식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성모임은 나의 삶과 동반하면서 희로애락을 같이 했기에, 다른 말로 하자면 마치 “친정”과도 같이 나의 모든 생활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은 영향을 준 단체라고 할 수 있다. 

 여성모임 속에서 내가 집중했던 일은 “군 위안부”로 끌려간 할머니들의 인간 존엄성 회복을 위한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많은 독일사람들의 참여를 끌어내기도 했었는데, 그들은 할머니들의 참혹한 인생이 마치 자기 자신들이 직접 경험한 것과 같은 태도를 보여주며 도왔다. 즉, 정신대 할머니들의 기막힌 사연을 자기 운명과 슬픔으로 해석하면서, 보편 종교인의 그런 충실하고 따뜻하고 진실한 마음을 보여주었고, 우리의 운동을 격려해주는 그들을 체험했다. 그러면서 나는 스스로 자문하게 되었었다. 독일 여성들이 어떤 억울하고 비참한 경우를 당했을 때 나도 저들이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것처럼 진정으로 내가 그들을 도울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 즉 “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서 왜곡된 한일 관계사의 사록 변경에 대해 방관하거나 묵묵히 지켜보기만 하는 정부에 대한 비판과, 2000년 여성법정 지지서명운동 등을 전개하면서 당시 무능한 한국의 상황 그리고 여성모임 회원뿐만 아니라 독일인 여성에 대한 친밀감과 연대감을 동시에 확인하면서 독일 사회가 나에게 부여해 준 “의식주” 의 해결과 안정에 대해 감사의 마음은 하늘과 같은 데도, 이상한 이기주의가 나를 휩싼다.  즉, 내가 발 딛고 살고 있는 이 독일사회의 복지나 번영을 위해서는 한국과 관련된 일에 비해 노력을 별로 하지 않은 것 같다. 22년을 살았던 한국에 대한 태도와, 내가 35년이 넘도록 살아온 이곳 독일에 대한 태도와 모습이 이토록 차이가 난다는 사실에 나는 흠칫 놀라곤  한다. 즉 독일사회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처럼 끈질기게 매달리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한국사회가 보다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여성모임 활동 속에서 한국을 비판하는 데 집중해 왔기 때문에, 한국사회가 갖는 장점과 여러 가지 가능성을 발견하고 확대시키는데 조금 태만했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쨌거나 여전히 나에게는 한국에 대해 연민의 정이 강하게 자리한다. 나의 이런 모습은 독일 사회의 한 시민으로서 독일단체에 참석하고 협력하는 데에서도 드러난다. 즉 독일 단체에 대해서는 그 목적을 위해 끈기 있고 적극적이며 지속적인 모습을 발휘하기가 힘이 든다. 바로 이점이 나에게 있어서 “한국 여성모임”과 다른 것이다.

 내가 특별히 노력을 하지 않아도 공통점이 많은 사람들과는 그냥 서로 마주하고 앉아 많은 대화가 없어도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것에 비해, 독일 단체 내에서는 언제나 발언을 통하지 않고서는 의사전달이 되지 않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물론 독일 사람들과도 장시간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인간적 친밀성이 싹트고 서로에 대한 이해심과 존중의 느낌을 받게되며 서로 진실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 그런데도 독일인과는 어떤 분명한 간격이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들은 나의 개인적인 정서에 정을 주거나 사적인 인생살이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그에 비해 내가 특별한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여성모임은 다르다. 서로의 세계관을 넓히고 인간대 인간의 사적인 사귐은 일을 통해서만 시작했기에, 지금 돌이켜 보면 입장과 의견의 차이로 간혹 남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가 또 이런 반목은 이슬 같이 없어지기도 한다. 이것도 25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니 단체라기 보다는 마치 가족과 같은 관계란 느낌을 받게 된다. 나는 이러한 따듯한 정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나의 사회적 인식을 깨워주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시야를 기를 수 있게 했던 여성모임에 모든 정력을 쏟아 소정의 목적을 성취했을 때 만족감을 향유했었지만, 때론 일에 치어 시달리기도 했다.

 이제는 여성모임 안에서 위로와 편안함을 염원하고 싶다. 점점 이 세상을 등지는 회원들이 생기고 있고 이는 앞으로 더 늘어갈 것을 생각하면 멜랑코리한 감정과 아쉬움이 남는다. 서로를 포용하며 따뜻하고 좀더 열린 마음으로 서로에 대한 깊이 있는 신임을 바탕으로 하는 연대감을 누리면서 살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