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여정의 동반자

-유정숙-

이제 나의 독일 삶이 19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그 중에서 약 16년 간 나는 여성모임에 몸을 담고 있는 셈이다. 만약에 재독한국여성모임이 이 독일 땅에 없었다면 여기서의 나의 삶이 어떠하였을까? 하고 언젠가 나는 질문을 해보았다. 그런데 상상을 해 보려고 한참 이리 저리 회고를 해 보았으나 결국에는 상상이 안돼 이 질문을 잊기로 하였다. 결국 나의 삶에서 여성모임이 그 만큼 이미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삶의 여정을 동반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현재에서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현재 나는 우리 여성모임의 총무직을 맡고 있다. 그러니까 1989년에도 한 번 이 직을 맡았으니 두 번째로 다시 맡은 셈이다. 그 당시의 여성모임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많이 변하여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책임 있는 일을 두 번씩이나 맡아서 할까? 하고 또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여보게 된다. 왜냐하면 여성모임의 발전과정이 그렇게 평탄치만 않았기 때문이다. 골머리를 앓을 때도 많았고 가슴이 아플 때도 많았고 상처받은 느낌을 가진 적도 있었고 그러나 기쁠 때 그리고 뿌듯할 때도 또한 많았다.

 내 기억에 그 동안 딱 한번 여성모임에서 나와 버릴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게 90년대 중반 이후인 것 같다. 회원들 사이에서 여성모임의 정체성, 그와 관련하여 회원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각자들의 의견의 차이가 그 당시의 갈등내용이었던 것 같다. 어느 누구도 이제까지 지속된 여성모임을 뭐라고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이 갈등내용이 내포하고 있는 자연적 성격이라고 본다. 그러나 여성모임이 일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주변조건으로서의 정치상황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 그것이 여성모임의 각 회원들의 일하는 방법과 내용에 대한 의견의 차이를 좀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여성모임 초창기서부터 문민정부가 들어설 때까지는 특히 김 대중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는 어떻든 모든 회원이 반 독재투쟁을 같이 해 왔다. 김 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부터 그러면 여성모임은 이 정부와 어떤 관계를 맺는 비정부조직(NGO)인가? 하는 질문이 던져 졌을 때, 여기에서 각 회원들의 의견의 차이가 점점 더 선명해지게 되었던 것 같다.

 나의 여성모임탈퇴에 대한 나 스스로의 질문은 머릿속에서 정리를 하고 이 질문을 던져 버렸으나, 약 몇 년간은 여성모임이 진행되는 상황에 내가 간격을 두고 지낸 적이 있다.     

 초기에서부터 현재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독일에 와서 약 일년 있다가 재독한국여성모임이라는 단체가 있다는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한국에서도 그 당시에 그렇게 마땅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여성단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회원이 되었을 때는 이미 여성모임이 10년간 성장이 되어 그 구조나 일하는 방법, 그리고 회원의 수가 이미 자리를 구축하고 있는 상태이었다. 그래서 나는 새 회원으로서 여러 회원들의 눈치도 보면서 나의 자리를 잡으려고 수년 간 노력을 하였다. 그리고 일의 내용들이 나의 가치관과 연결하여 볼 때 나에게 기쁨도 주고 뿌듯한 느낌도 주었기 때문에, 조직의 운영문제나 골치 아픈 인간관계의 문제도 있었으나 그런 것들이 나에게는 그렇게 부담을 주지 않은 것 같다. 새 회원이 가지는 장점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오랫동안 회원으로서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그 당시 여성모임이 처해있던 상황 때문에 89년에 총무직을 맡게 되었다. 나는 나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을 하였고 그러면서 여성모임 회원들을 개인적으로 좀 더 알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그러다 보니 여성모임은 나의 삶을 점점 더 많이 동반해 가는 역할을 하게 된 셈이다. 2년간의 총무직을 끝냈을 때 아주 잠깐 동안은 마음이 상당히 허전하였다. 그 이후 서기직도 맡아 열심히 보고서를 쓰고 하는 재미도 있었다. 덕분에 한글을 컴퓨터로 치는데 도사가 되어버리기도 하였다. 어떤 때는 회의하는 것을 녹음하여 집에 와서는 목욕을 하면서 그 걸 또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듣고 나서 정확한 보고서를 쓰기도 하였다. 엄청난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남아 있는 느낌은 그 일을 하는 동안 기쁨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여성모임 회원들이 있는 지역으로 대표모임이나 소모임의 일로 부산하게 돌아다니면서 어떤 때는 정신이 다 빠져 버릴 것 같은데도 미친 듯이 그러나 또한 기쁨을 가지고 돌아다녔다. “왜 이러는 것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에 대해서는 답이 명확하게 나온다. 그 시간동안 인간적으로 정을 나눌 수 있는 많은 여성모임회원들이 친구가 되고 언니로서 인생의 반려자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어디서 이런 친구와 언니를 사귈 수 있을까!!! 금상첨화라고 이 회원들과는 내가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가치관을 일을 통해 대화를 통해 서로 나눌 수도 있는 것이다.

 약 이년 전부터 다시 총무직을 맡았다. 내 생각에 책임이 무겁기는 하지만 기꺼이 맡았던 것 같다. 이제 25년이 되어 가는 여성모임은 제반 주위환경에 있어서 과거와는 다르고, 회원들도 25년의 나이를 더 먹었으니 모임의 구조나 일하는 방법에 있어서 변화를 가져와야만 하는 시기가 되었다. 이 구조를 개혁하여 그 틀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 현재 여성모임의 과제인데 나는 여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야겠다고 나는 마음을 먹었던 것 같다. 그것은 결국 앞으로의 나의 삶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휴가를 내어 쉬질 않고 여성모임 일하려고 그 아까운 휴가를 내어도 아깝지가 않은 것이 나의 마음이니 이것이 나와 여성모임과의 관계를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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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재독한국여성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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