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인간적으로 보호해 주는 곳 


-박인숙-


나는 독일에 와서 약 10년 간 한국인과의 접촉이 없이 살았었다. 우연히 클라우젠호프에서 한-독 가정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 곳에서 여성모임회원이었던 장혜숙을 사귀게 되었다. 나는 에센에 살고 장혜숙은 보쿰에 살다보니, 자녀들과 남편들도 서로 사귀게 되었다. 여성모임에 나와 보라는 권유를 받고 여성모임에 나가보니 힘센 여성들이 많았다. 그 동안에 한국어를 많이 잊어버리고 또한 독일어도 뭐 그렇게 능통한 상태도 아니어서 처음에는 주눅이 들었다. 김양순 회원 비슷하게 삶이 뭔가 뒤죽박죽 되는 느낌이었는데, 세미나 참가이후 집에 와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나 자신이 어떻다’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성모임회원들이 능력이 많으니 내가 큰 일은 못해도 그냥 그 자리에 있다는 그 자체가 나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하는 생각 속에 여성모임의 회원으로 머물러 있게 되었고 상당한 인내심을 가지고 이제까지 참석을 하고 있다. 


 회원으로서 같이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은, 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눈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많은 것들을 '눈치'로 파악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요즈음 여성모임의 회원으로서의 나의 위치와 자세를 발견한 것은 나의 위치가 여기서 중요하게 되었고 또한 나의 자세도 능동적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나의 한국에서의 성장과정에서 배운 것은 사람들의 지위에 따라 그 사람이 훌륭하냐 아니니 하는 것들이었다. 나는 독일에 간호사로 온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하러 왔었고, 한국에서 공부하면서 생각할 때 간호사나 은행직원, 상업학교를 다니는 여성들은 가정에서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그 직업을 택하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대부분이 지방에 살고 있는 여성들이 그러한 직업에 종사하게 된다는 그런 식의 사고를 하였는데, 독일에 와서 직접 간호사로 종사하는 여성들을 만나게 되었다. 나 자신도 아무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배운 사고방식 때문에 뭔가 높은 그리고 낮은 지위가 어떤 직업을 가지는가에 따라 인간을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독가정을 꾸려가고 있는데 남편은 나의 사회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해 준다. 오히려 내가 우울증이 생겨 나를 닫아버리려고 하면 남편이 적극적으로 그러지 말라고 나를 후원해 준다. 그런 것들이 나를 흐뭇하게 해준다. 또한 여성모임의 장이 다른 회원들도 나와 비슷한 문제가 있어 나를 이해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고 그에 대한 신뢰감도 준다. 


 여성모임의 미래가 회원들의 수가 줄어든다는 것에 달려 존망이 결정된다고 나는 보지 않고 그에 대해 그렇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고 본다. 이제는 나이와 관련하여 우리들의 건강에 대해 생각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탈퇴한 회원들이 그 전까지도 여성모임이 '친정' 이라고 말을 해 놓고도 탈퇴를 하는 것을 나는 비겁하다고 본다. 


 나도 간혹 여성모임에 나가는 것이 나에게 부정적으로 비추어 질 때 '나가 버릴까' 하는 생각도 하였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내가 단체를 안보고 개인을 보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고, 그를 또한 극복하는 과정도 나에게 있었다. 


 내가 여성모임에 들어와서 재미있었던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우리가 갱년기란 주제로 세미나를 준비할 때 회원이었던 전미자씨와 함께 책임을 맡은 적이 있었다. 회원이었던 김용주씨가 자료를 찾아오고 전미자, 신정남 회원과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준비할 때였다. 


 안차조 회원의 딸과 아들이 엄마가 살아가는 방법에 있어서 엄마가 여성모임의 회원인 것에 대해 여러 가지 면에서 자랑스러워하는 것, 예를 들면 아이들이 어릴 때 한국말을 안 하려고 할 때 여성모임세미나를 통하여 배운 교육방법을 통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한국말과 한국문화를 접촉하게 된 것들을 알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나와 자녀들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한마디로 나의 자녀들이, 내가 한국 엄마라는 것, 그래서 우리 집에 오는 한국 손님들이 한국말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 두 딸은 두 문화권의 자녀들인데 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한국말을 배워야 한다는 것에 신경을 안 썼다. 나의 교육철학은, '아이들이 잘 놀고 친구를 많이 사귀는 것' 이었다. 내 딸들이 12, 13 살이었을 때, 클라우젠호프에서 있었던 우리 회원 송금희씨가 이끈 청소년모임 세미나에 참석하고 나서 내가 고추장을 사오면 이게 진짜 고추장인가 하고 물어보게 된 것, 아이들이 소풍갈 때 김밥을 싸달라고 하는 것, 첫 딸이 아비투어가 끝나고 구 회원 장혜숙씨 집에 갔다와서, '왜 나한테 한국말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첫 딸이 법학공부가 끝나고 실습시기에 한국에 가서 법률실습을 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한국과의 관계가 아주 자연스럽게 되는 것에 대해 

기쁘다. 한국사람들과 같이 한다는 것이 당연지사로 되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여성모임이 어떻게 꾸려져 나가야 한다는 것에 대한 나의 기대는, 회원들이 서로 인간적으로 보호해 주는 것이다. 자기를 먼저 주장하기 이전에 상대방의 의견을 먼저 들어주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여성모임 내에서 진담이든 농담이든 서로 마음 터놓고 한 말들은 그것으로 끝나야지 그와 상관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하는 식의 자세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본다. 


 여성모임은 이제까지 많이, 그리고 다방면으로 사회적인 일을 하였다. 앞으로는 여성모임이 여성모임이라는 특성 하에 예를 들면 이번에 시작한 '여성의 상담전화 설치'등과 관련된 일을 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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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재독한국여성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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