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걸음마에서 뚜벅뚜벅 걷기까지

-김양순-

나는 독일에 간호사로 왔다가 브라질에 이민 가서 가족을 이루었고, 그곳에 살면서 그곳의 문화와 풍습 그리고 그 국민성이 나에게 잘 맞아 내 것으로 알고 살다가, 하던 사업이 안 되는 바람에 결국 14년의 브라질 생활을 뒤로하고 독일로 다시 오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 독일생활에 다시 적응하기가 너무나 어려웠고, 특히 몸도 마음도 독일에서의 생활을 받아드리지 않았다. 이제야 어느 정도 자리도 잡히고 적응도 되어 내 삶에 대한 회고도 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브라질에서 돌아온 후 그게 1988년이었다. 당시 여성모임 이숙자 회원의 권유로 그 당시 뮌헨의 김현숙 회원 집에서 열린 여성모임 대표회의에 참석하게 되는 기회가 있었다. 그 당시 그 회의에 참석하게된 나의 동기는 단지 상당히 외로움을 느꼈기 때문이었고 사실 재독한국여성모임이 무엇을 하는 단체인지도 몰랐다. 그 날 청바지 차림의 유정숙 회원이 밤이 늦도록 지치지도 않고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하면서 열렬히 말을 하는 것이 나에겐 무척 인상적이었다. 내가 그 당시 한국말도 그리고 또한 독일말도 잘 구사를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열정에 감탄을 하였다고 할까? 그러면서 여성모임에 회원으로 남아있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내가 여성모임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그렇게 느낄 수가 없었다. 회원들도 많았고 그러다 보니 회의 때 내가 말을 할 차례도 안 왔고 내 자신 스스로 입도 안 떨어지고 하여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그러나 하나 이상한 것은 여성모임의 회원들이 나에게는 뭔가를 비추어주는 느낌이었고 또한 나에게 인간적인 따뜻한 느낌도 주었다. 그러다 보니 꾸준히 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여성모임의 회원으로서의 시작인 것 같다. 여성모임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입을 열게 되면서 말을 할 수도 있게 되고, 독일에 다시 와서 나의 한국, 브라질 그리고 독일에서의 삶, 그러니까 이 세 나라 속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과 갈등을 겪고 있을 때 여성모임에서 한국말도 다시 배우게 되었고 그 당시 내가 어린아이와 같다는 심정이었는데 나를 북돋아 주어 이제는 성장하여 떳떳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기걸음마를 하다가 이제는 뚜벅뚜벅 걷는 것 같다.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는지!!!

 이제는 내가 회원이라고 스스로 느끼고 있고 이제야 활동을 시작한다고 느끼면서 보람도 느낀다. 현재 여성모임에는 남을 사람들만 남은 것 같고 그래서 여성모임이 계속 존재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돌아보면, 여성모임은 새로운 회원이 들어와 쉽게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고 본다. 씩씩하고 똑똑한 여성들이 많다보니 회원들 사이에 갈등도 많았던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서로 부딪히는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사실 나에게는 어려웠다. 그것을 지금까지 내가 견디어온 것을 보면 나도 인내심이 있었던 것 같고 또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서로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면 오히려 에너지가 더욱 더 생길텐데 그렇지 않게 되었던 것이 아쉬울 때가 많았다.

 소수민족으로서 우리가 여기서 어렵게 살고 있는 부분을 회원들끼리 인간적인 정을 나누며 더 두터워 질 수 있게 하는 것이 앞으로 우리의 과제로 본다.

여성모임에서 독일어연수프로그램을 만들어 자녀들과 함께 자녀들은 한국어를 배우면서 몇 주일 간 공동생활을 한 것은 나에게 아주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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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재독한국여성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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